냉장고를 열고 한참 들여다본 적이 있을 겁니다. 뭔가 많긴 한데 뭘 만들지는 모르겠고, 결국 배달 앱을 켭니다. 그리고 사흘 뒤에 그 재료들을 버립니다. 저도 자취 초반 2년쯤은 이걸 반복했습니다.
냉털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요리를 못해서가 아닙니다. 순서를 안 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뭘 만들지부터 생각하면 항상 재료가 하나씩 모자랍니다. 반대로 뭐부터 꺼낼지를 먼저 정하면, 거기서부터 요리가 따라 나옵니다.
냉장고 안의 재료는 수명이 제각각입니다. 이 순서를 대충 알아두면 판단이 빨라집니다.
사흘 안에 써야 하는 것은 잎채소입니다. 시금치, 부추, 상추, 깻잎. 특히 부추는 사 온 지 이틀만 지나도 끝이 물러서 만지면 미끌거립니다. 그 다음이 버섯과 숙주입니다. 버섯은 표면이 축축해지기 시작하면 이미 늦은 겁니다.
일주일쯤 버티는 것은 애호박, 오이, 가지, 두부입니다. 두부는 개봉만 안 했으면 표시된 날짜까지는 대체로 괜찮고, 뜯었다면 물에 담가 냉장에 두되 이틀 안에 쓰는 게 맞습니다. 물을 매일 갈아주면 조금 더 갑니다.
2~3주 이상 가는 것은 양파, 감자, 당근, 무입니다. 이것들은 급하지 않습니다. 냉털을 할 때 가장 흔한 실수가 양파와 감자부터 손대는 것인데, 그건 어차피 다음 주에도 멀쩡합니다. 오늘 꺼내야 할 건 시들기 시작한 잎채소 쪽입니다.
재료를 늘어놓았으면 그중 제일 먼저 죽을 재료 하나를 정합니다. 그게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나머지는 거기 붙는 조연이고요.
예를 들어 부추가 시들기 시작했다면, 오늘은 부추가 주인공입니다. 계란이 있으면 부추전, 돼지고기가 있으면 부추무침을 곁들인 제육, 아무것도 없으면 부추만 넣은 간장 부추무침. 부추를 어떻게든 소진하는 게 목적이고, 뭘 만들지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이 순서를 뒤집으면 실패합니다. "오늘 제육볶음 먹어야지" 하고 시작하면 고추장이 없고, 없는 걸 사러 나가고, 그 사이 부추는 또 하루를 더 버팁니다.
냉털을 한다고 냉장고를 통째로 비우려 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료 일곱 가지를 한 냄비에 넣으면 대개 맛이 뭉개집니다. 볶음밥에 뭐든 넣으면 된다는 말이 있지만, 수분 많은 채소를 서너 가지 넣으면 밥이 질어져서 죽에 가까워집니다.
현실적인 기준은 한 끼에 재료 세 가지입니다. 주인공 하나, 받쳐주는 것 하나, 향 내는 것 하나. 부추전이면 부추·계란·간장이고, 감자볶음이면 감자·양파·소금입니다. 이 정도가 맛도 나고 설거지도 적습니다.
대신 한 재료를 사흘에 걸쳐 다르게 씁니다. 애호박 한 개면 첫날은 볶아서 반찬, 둘째 날은 된장찌개에, 셋째 날은 전으로. 같은 재료인데 매번 다른 음식이 됩니다. 한 번에 다 쓰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덜 질립니다.
순서까지는 정했는데 "이 조합으로 뭐가 되지"에서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추랑 계란이랑 양파가 있는 건 알겠는데 떠오르는 게 부추전밖에 없을 때요.
그럴 때 쓰라고 만든 게 이 사이트입니다. 냉장고에 있는 걸 눌러두면 지금 바로 되는 요리와 하나만 더 사면 되는 요리를 나눠서 보여줍니다. 없는 재료를 사러 가야 하는지 아닌지가 바로 보여서, 저는 장 보기 전에 한 번 켜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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