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원룸에서 제육볶음을 해본 사람은 압니다. 다 만들고 나면 입맛이 없어집니다. 땀 흘리며 15분 볶았는데 정작 먹고 싶지가 않은, 좀 허탈한 상황이요.
기숙사나 고시원처럼 애초에 화구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자레인지와 뜨거운 물만 있으면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요령은 "불 대신 뭘 쓸까"가 아니라, 애초에 불이 필요 없는 요리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입니다.
무침은 불을 안 씁니다. 그런데 자취 요리 목록에서 늘 뒤로 밀립니다. 반찬 취급을 받아서인데, 한 끼로 먹어도 충분합니다.
오이무침이 가장 빠릅니다. 오이를 어슷 썰어 소금 한 꼬집에 10분 절였다가, 나온 물을 손으로 꽉 짜는 게 핵심입니다. 이걸 안 하면 무치고 나서 금세 물이 생겨서 싱거워집니다. 고춧가루, 식초, 설탕, 다진 마늘을 넣고 무치면 끝인데, 식초를 넉넉히 넣는 쪽이 여름엔 낫습니다.
양배추 샐러드도 칼만 있으면 됩니다. 얇게 썰어 찬물에 5분 담갔다 건지면 아삭해집니다. 마요네즈에 식초와 설탕을 조금 섞어 버무리면 돈가스집에서 주는 그 맛이 납니다.
두부는 그냥 먹어도 요리가 됩니다. 물기를 키친타월로 눌러 뺀 뒤 썰어서 간장, 참기름, 다진 파를 얹으면 그대로 한 접시입니다. 여기에 김치를 곁들이면 꽤 그럴듯한 한 끼가 됩니다. 데워 먹고 싶으면 전자레인지에 1분이면 충분합니다.
전자레인지를 데우는 기계로만 쓰는 건 좀 아깝습니다. 가열 자체는 제대로 되니까 조리 도구로 쓸 수 있습니다.
감자는 통째로 씻어서 포크로 몇 군데 찌른 뒤 젖은 키친타월로 감싸고 4~5분 돌리면 익습니다. 찜기에 15분 쪄야 할 걸 5분에 끝내는 셈입니다. 여기에 버터와 소금이면 그대로 한 끼가 되고, 으깨서 마요네즈와 섞으면 감자샐러드가 됩니다. 찌르지 않고 돌리면 터집니다. 청소하기 정말 번거롭습니다.
계란찜도 됩니다. 계란 두 개에 물 반 컵, 소금 조금 넣고 섞은 뒤 30초씩 나눠 돌리면서 중간에 저어주면 됩니다. 한 번에 2분 돌리면 터지니 꼭 끊어서 돌리세요. 랩은 씌우지 않는 게 안전합니다.
숙주나 시금치 같은 나물은 물 한 스푼과 함께 그릇에 담아 랩을 느슨하게 덮고 1분 30초 돌리면 데쳐집니다. 냄비에 물 끓이는 시간보다 빠릅니다. 참기름과 소금에 무치면 나물 한 접시고요.
이런 요리들이 반찬처럼 느껴지는 건 단백질이 빠져 있어서입니다. 오이무침만 먹으면 한 시간 뒤에 배가 고픕니다. 여기에 두부 반 모나 계란 하나, 참치캔 하나만 얹으면 그때부터 끼니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엔 냉장고에 두부와 계란만은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둘 다 불 없이 먹을 수 있고, 뭘 만들든 한 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불을 안 쓴다는 조건이 붙으면 선택지가 좁아 보이지만, 실제로 재료를 늘어놓고 보면 꽤 남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걸 눌러보시면 그중 무침이나 샐러드처럼 불 없이 되는 것들이 어떤 건지 금방 골라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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